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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를 보았다

by 멋져지는아빠 2021.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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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늦 가을, Vancouver Film School 졸업작품으로 다큐멘터리를 구상하려고 했다. 마침 달라이라마가 벤쿠버에 방문한다고 들었고 불자로서 불심이 충만하던 그때 나는 달라이라마를 접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 그가 밴쿠버에 온다는 뉴스를 접했을때 나는 이 단어의 뜻이 뭔지 몰랐다. 오는 날이 정확히 9월 중순, 약 4일 일정으로 방문한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달라이라마를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보지를 못하는데 여기까지 와서 그를 만나다면 정말 평생에 남을 특별함일 것이라 생각 했다. 3월 부터 EBM을 시작하고 대충 1년이 지나가면서 Final project할때가 다가오고 있었고 뭘로 할까 고민하던 차였다. 그런데 문득 그가 와서 4일 동안의 일정을 다큐멘터리로 담고 기회가 된다면 인터뷰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 계획을 Dan 선생에게 말했고 그도 방송쪽에 있었는지라 굉장히 긍정적으로 생각을 했다. 나는 그때부터 그와의 인터뷰를 잡고 그의 스케줄 파악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달라이 라마는 밴쿠버가 첫방문이 아니다. 수십년전에 그의 오랜 친구 Victor Chen의 초대로 방문한적이 있었다는데 이번 방문에는 그 뿐만 아니라 '에쿠르 툴레'와 아프리카의 유명한 신부님 그리고 여러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이 모여 담론하는 자리가 목적이었다.

사실 그와 개인적으로 인터뷰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기대는 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시도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인터넷으로 정보를 수집할 수 밖에 없었다. 아직 행사가 진행되려면 몇개월이 남았고 그 만큼 참석자들의 변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달라이라마가 북미에서 유명해서 그런지 뉴욕에 그의 대규모 사무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도 처음에 Tibet 사무실에 전화를 해서 안 것이다. 티벳도 전화하고 뉴욕도 전화해 보고 마침내 벤쿠버의 달라이라마 방문 준비위원회에 전화 해서 Media press증을 신청하게 된것이다.

그가 어디선가 나타나기만 하면 취재진들이 그를 애워쌓는 것은 당연지사다. 나는 학교에서 빌린 카마라 Sony EX-1으로 그를 촬영하기로 했다. 한 10분짜리로 생각하고 그의 도착순간부터 다음 행선지인 오타와로 가기까지 그의 동선 을 따라가려고 했다. 이메일도 Business Writing 수업의 로빈 선생님께 검증을 받아서 보냈고 솔직하게 밴쿠버 필름 스쿨 학생인데 촬영을 하고 싶다고 했다. 몇일간의 기다림 끝에 이메일로 답장이 왔는데 정말 기뻤다. 불가능 할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걱정이었던건 다큐멘터리 자체는 너무 밑밑할 것 같았다. 기획했던 50분 분량은 못채울 것 같고 20분은 할수 있을지 걱정 됬다. 나의 다큐멘터리는 결국 그를 렌즈안에 담는데는 성공할 것이지만 이야기가 없어서 걱정이었다.
모든 영상물에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지금와서 제일 힘들었던 건 혼자한다는 것이다. 내가 너무 자만했던 것이다. 내가 능력이 되는지 안되는지 경력이 있는지 없는지 떠나 현지 생활을 잘 아는 친구가 있었다면 잘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난 그렇지 못했다. 반에서 영화쪽으로 하려던 애들이 없었는데다가 있는 애들은 여자들이 다 한팀이 됬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 할수는 없었다. 내가 촬영을 하려면 그 어느팀보다 빠르게 Final project에 근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찰영날짜는 다가왔고 그가 UBC대학교 강당에서 첫 촬영을 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CTV가 모든 권한을 독점중계로 하기로 했다. 촬영당일 나는 가방에 카메라, 비디오 카메라 노트만 들고 그를 만나기 위해 갔다. 택시로 UBC까지의 거리는 25분 안팍. 일찍 택시를 타고 UBC대학 내에 도착하니 중계차가 벌써 몇대가  있었고 준비중이었다. 나는 얼른 카매라를 꺼내서 도착 이전의 순간들을 보이기 위해 카메라의 녹화버튼을 눌렀다. 그순간 나는 왜 벤쿠버가 영화찍기에 좋은 곳인지 단번에 알았다. 아침햇살이 풍부한 광량과 함께 교내를 비추는데 그렇게 아름다울수가 없었다. 정말 어디에다 카메라를 들이대도 그림이 나온다는 말이 맞는것 같다.

그날 나는 달라이 라마를 촬영하기로 되있었고 한국인을 대표해서 만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서 중국이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 그의 방문을 불허하지 않았으면 한다. 아니면 현정부가 넘 기독교 색체가 강해서 그런것일수도 있겠다. 그 많은 사람들 중 동양 사람은 열손가락 안에 들었다. 수십명의 인파중 학생신분도 역시 나혼자 같았다. 간단한 다과를 먹고 모든 미디어 관계자들이 모인 극장에서 기다리는 기자들을 부른다. 그가 올시간이 된 것이다.

건물 밖으로 나가서 그를 기다렸고 (어떤 건물 뒷편 이었다)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다. 몇분 조금 지나 고급 검은색 승용차가 취재진 앞에서 한바퀴 돌더니 내 바로 앞에서 멈춰섰다. 그 순간 오른쪽 문이 열리고  달라이 라마가 내렸다. 두 손을 합장하고 티벳전통 승려복을 입은 모습은 사진이나 TV로 봐왔던 모습 그대로였다. 내 평생 그를 만날 수 있는 날이 오다니 불자로서 감개무량한 순간 이었다. 두손을 합장한 모습에서는 알수 없는 고귀한 자태를 뿜었었다. 이 세상의 어떠한 악한도 그에게는 해를 못끼칠 것만 같았다. 간간히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고 악수를 청하는 사람에게 악수도 해줬다. 이내 건물로 들어가자 나도 빨리 그의 강의를 촬영하기 위해 대기실로 들어갔다.

이윽고 사람이 와서 2분간 그를 촬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모두우루루 몰려 들어가니 강당안은 이미 그의 말씀 하나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온 청중들이 빼곡히 매워져 있었다. 나는 얼른가서 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여러 각도에서 찍고 또 찍었다. 달라이 라마는 검은색 선글라스에 빨간색 모자를 쓰고 있었다. 아마도 조명 때문에 눈이 부셔서 일 것이다. 플레시는 계속 터지고 몇분이 지나자 취재진은 나가야 했다. 조금이라도 더 찍고 싶었고 내심 디카보다 DSLR로 찍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됬다. 하지만 지금부터 지루한 강연의 시작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동양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실 달라이라마를 종교적인 지도자로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특히 서양에서는 종죠적인면 보다 평화의 상징으로 더 알려진 그이다. 이번에 그가 던진 화두는 CONFESSION 이던데 이 단어를 해석하면 연민정도로 알고 있다. 이것을 또 해석하려면 뭐라고 해야 할까. 스님인 그가 지나가면 불자들은 합장을 하는데 기본중의 기본이다, 근데 아무도 불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안한다. 달라이라마는 사람들과 마주치면 연신 합장을 하는데 백인들은 그져 동물원 원숭이 보듯 한다.


나는 달라이 라마가 책을 보고 그를 만난 일반인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와 눈을 마주치기 이전의 삶은 증오와 이기심으로 가득했지만 그가 우연히 그에게 인사를 건네고 눈을 마주치자 그동안의 모든 것들이 눈녹듯 살아졌다고 한다. 나도 그와 마주치면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 대한민국서 만나기 힘든 분인데 멀리 바다건너 만나게 될줄 누가 알았는가? 난 아무래도 불교와의 인연은 특별하긴 한것 같다.


쉬는 시간 중간중간 강의 시작전 그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가 수많은 인파에 둘러쌓여 다른 건물로 이동하는데 나는 그보다 몇걸음 앞에서 그의 모습을 담으려고 카메라를 높은각도로 잡고 있었다. 내가 어느정도 많이 찍었다고 생각했을때 존경의 표시로 그에게 합장 반배를 했다. 순간... 그가 나를 알아봤는지 내가 합장하는 모습에 나를 쳐다보고 받아주는게 아닌가?. 나는 놀랍고도 특별한 경험을 했다. 세상에 그가 내 인사를 받아주다니... 1초도 안된 그 찰나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 순간 그 수많은 인파중에서 나와 달라이라마 존자와는 통하는게 있었다. 같은 아시아권의 사람, 불교에 귀의했다는 것, 평화를 사랑하는 것, 불교를 이해하지 못하면 모르는 '우리'만의 세계. 내 자신을 어느 이유에서건 업그레이드 해버리는 순간. 두고 두고 내가 할수 있는 자랑거리. 나는 달라이 라마를 보았다. 지금와서 아쉬운 것은 그에게 다가가 몇까지 질문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못한 후회를 한 것이다.

하지만 이정도에도 만족한다. 적어도 또 만날 기회는 있었다. 4일 일정으로 벤쿠버에 온 그는 다음날 다운타운 유서 깊은 오피움 극장에서 그의 담론이 예정되어 있었다. 오전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게 벤쿠버의 여느때와 다를바가 없었다. 그날은 하지만 전날 못했던 인터뷰를 하고 싶어서 인터뷰 질문 몇가지를 생각하고 갔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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