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전 블로그 글 모음

월정사 단기 출가 체험 수기

by 멋져지는아빠 2021. 6. 15.
반응형

2008년 가을, 월정사 단기 출가를 1달 동안 체험했었다. 아래 글은 단기출가 관련 월정사에서 체험수기를 모집하던 중 내가 쓴 글이 당선되었고 결국 모과나무 출판사 책에 실리게 된 글이다.

 

#지탑일기

 

오대산 월정사 출가학교를 졸업한 많은 선후배 행자님들은 다 종다양한 이유로 행자 생활을 경험하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 그저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내가 월정사 단기 출가학교에 인연 이 되어 입학하게 된 계기는 내가 생각하고 있던 불교적인 삶 에 ‘화룡점정’을 찍고 싶었기 때문이다. 원래 종교는 없었다. 집안이 그랬다. 그런데 우연히 동국대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불교와 나와의 뗄래야 뗄 수 없는 운명 같은 인연은 시작된다. 영화연출을 전공한 나는 영 화감독이 되면 어떤 영화를 찍을지 고민하다가 한국적인 영화, 이를테면 임권택 감독처럼 한국의 미를 보여주는 영화를 만들 고 싶었다. 하지만 한국 문화에 자신이 없었는데, 학창 시절 해 외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해외 나가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는 데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괜히 외국인들을 만나면 조그만 나라인 한국을 자랑하고 또 소개하고 싶어진다. 나 역시도 그 랬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서는 해외생활로 인해 한국 문화를 많이 안다고 자부하지 못했다. 동국대학교에는 <자아와 명상>이라는 수업이 있다. 불교학 교이기 때문에 그 수업을 수강해야 졸업이 가능하다. 원래 종 교에 대한 특별한 거부감이 없어 스님의 말씀을 듣기는 들었 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알아차린 것이 있었으니 바로 ‘불교 문화 가 곧, 한국 문화’라는 것이다. 결국 그때부터 불교적인 철학이 담긴 영화를 찍고 싶어졌고 <자아와 명상> 수업을 더욱 열심히 들었으며 함께 수업을 듣는 72 73 학인 스님들의 모습도 유심히 지켜보게 되었다. 불교 관련 영 화나 다큐멘터리 책들도 많이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불교와 인연이 되지만 나 같은 경우 한국 문화에 대한 갈증 또는 영화 소재 찾기 정도 의 관심이었다. 그리고 대학교 1학년 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삼사라The Samsara>라는 영화가 내 생각을 더욱 확고하게 해주었다. 영화 배경은 티베트이지만 영화를 만든 자본과 제작 사는 유럽인 영화다. 영화를 보고는 ‘어째서 동양 정신이 깃든 영화를 서양인들이 만들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타까웠다. 졸업 후 첫 직장으로 불교TV에서 일하게 되었다. 여러 이유 가 있었고 불교 영화는 찍지 못했지만 불교 관련 일도 계속하 고 전공도 나름 살리는 일이라 생각했다. 불교 관련 방송국이 다보니 매주 전국의 사찰을 돌아다닐 수 있었고 유명한 스님들 도 직접 만나 뵐 수 있었다.



시간이 빌 때는 집 근처 선원에도 열심히 나갔다. 그러던 중 우연히 출가학교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고 언젠 가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까지도 내 인생이 불교와 인연 이 깊다고만 생각했었는데 1년 동안 유학 갈 일이 생겼다. 출국 전 남은 시간에 이왕이면 불교 문화를 직접 접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월정사 출가학교에 신청했다. 거창하게 인생에 어떤 뜻 이 있었다거나 집안에 우환이 계기가 되었던 것이 아니다. 단 순히 불교적인 삶에 내 인생을 적시고 싶었다. 다큐멘터리를 봤기 때문에 일정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예상했 었다.

 

<내가 직접 편집한 당시의 체험>

담배도 술도 하지 않고 원래 고기를 굳이 찾아 먹지 않는 터라 음식도 맞을 거라 생각했다. 나름 이유를 가지고 입소했 지만 수행정진을 하는 데 있어 도반은 참 좋은 수행 벗이었다. 묵언수행을 하고 싶은데 자꾸 말 시키는 행자, 밖에서 사탕을 몰래 가져와 나눠주는 행자, 심지어 담배를 몰래 피던 행자까 지 있어 당시에는 ‘비싼 돈 내고 와서 왜 저런 행동을 할까?’ 하 고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의 모습을 통해 나를 보았고 더욱 더 훌륭한 마음공부를 할 수 있었던 계 기가 되었던 것 같다. 74 75 아직도 찰중스님과 전국 방방곡곡에서 우리 행자들을 위해 법문을 하러 오신 스님들의 말씀들이 생각난다. 태어나서 처음 삭발하고 거울 앞에 섰을 때 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기억도 있다.



그때는 진짜 내가 내 모습을 보고 뭔가를 깨달은 줄 알았 다. 그 정도로 강렬했다. 하지만 한 달 동안이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스펀지처럼 빨아들여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선원에도 다녔기 때문에 생활이 완전 생소하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말없이 솔선수범하는 내 보습을 보고 남자 행자들 은 출가할 거냐고 물었다. 출가학교는 행자 체험 프로그램이라 졸업 후 바로 출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열심 히 프로그램에 맞춰 교육을 받으면 출가를 해야겠다는 발심이 생기는 것이다!


내 인생의 영화 <삼사라>에도 이런 대목이 있다. “한 방울의 물이 마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방울을 바다에 던지면 되는 것이다. 나도 어느 순간 출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체험만 하려고 왔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나의 모습이었다. 나의 고민을 알고 계셨는지 벽을 보며 가부좌를 틀고 고민하는 나에게 찰중스님께서 지나가는 말로 “고민하지 마세요”라며 한마디 하신다. 어떤 의미였을까 너무 궁금했다. 물어보면 답 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뭣꼬’ 화두처럼 결국 내 가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저녁 9시까지 이어지는 일정은 힘들기는 커녕 매우 즐거웠다. 자연 속을 거닐며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공양시간은 또 어떤 가.



쌀 한 톨 한 톨에 그렇게 깊은 의미가 있을 줄을 모든 것이 첨단화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알고 있을까? 이밖에도 전나무 숲길 포행, 오대산불교문화축전, 졸린 눈 을 비벼가며 참여했던 새벽예불, 오대산 등산까지 다양한 프로 그램을 통해 출가학교의 매력에 빠질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졸업식 전날 삼천배를 하고 드디어 졸업하는 날이 왔다. 찾아 오는 이 없이 혼자 일주문을 나서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방하착放下着하며 살자고. 한 달이라는 시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누구에게나 소 76 77 중한 시간이지만 나에겐 더 없이 특별한 시간이었다. 매달 월 정사 관련 소식지를 받아볼 때마다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다. 특히 참가자들의 체험 수기를 읽을 때도 그렇다. 모르는 사람 이 읽으면 똑같은 이야기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들에게는 각 자 인생에 있어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는 것을 잘 알기에 격 하게 공감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사회에 나와 평범한 직장인으로 지내지만 나름 출가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한때는 스님들께 서 해주시던 좋은 말씀들이 사바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정글 같은 세 상에 살아남아야 하는데 스님 말씀처럼 했다간 손해를 보는 게 불 보듯 뻔하지 않을까 해서였다. 하지만 아니다.



오히려 사바 세계가 불교를 공부하고 실천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이다. 벌써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래도 강원도 근처에 일이 생겨 방문하면 출가학교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일주문에서부 터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삼보일배한 기억, 발우공양, 백팔 배, 묵언수행 등 아직도 너무나 생생하다. 그때의 좋은 기억들 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당시 매일 쓴 일기를 책으로 만들었 다. 나만의 책 《 지탑일기》는 가장 아끼는 보물이다. 지금은 모두 바쁘게 각자 생활을 하는 우리 ‘지’자 돌림 행자 님들, 함께 수행 후 출가를 택하신 행자님들 어디서 무엇을 하 시든 참 좋은 인연이었고 늘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18기 지탑 차원석

 

 

다녀왔습니다

COUPANG

www.coupang.com

 

반응형
사업자 정보 표시
한켈하우스 | 차원석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광명로 411 | 사업자 등록번호 : 711-20-01131 | TEL : 010-3085-4902 | Mail : hankelhaus@hankelhaus.com | 통신판매신고번호 : 호 | 사이버몰의 이용약관 바로가기

댓글